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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반대의 맹장 이계실 목사가 담임했던 교회0013 덕천교회 (함남 함주)

 (0013) 덕천(德川)교회(함남 함주)

신사참배 반대의 맹장 이계실 목사가 담임했던 교회

 해방 전에 북한지역에는 덕천교회, 또는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몇 있었다. 평안남도 덕천군에는 덕천읍(德川邑)교회가 있었고,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에는 덕천동교회(德川洞敎會)가 있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덕천교회는 함경남도 함주군 동천면(東川面) 풍서리(豊西里)에 있었다. 이 교회들은 모두 장로교회들이었다. 한반도에서 제일 북쪽은 함경남도 온성군 풍서리인데, 덕천교회가 있었던 풍서리는 그 풍서리가 아니다. 풍서리란 이름은 아주 흔했다.

신사참배 가결에 반대해서 독자노선을 걷다

덕천교회는 1921년에 세워졌다. 초기에는 어떤 분들이 담임했었는지 기록을 잘 찾을 수가 없다. 1930년대 후반부에는 이계실(李桂實) 목사가 담임하고 있었다. 이 이계실 목사와 덕천교회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덕천교회는 이계실 목사 때문에 널리 알려졌다고 할 수 있다. 이계실 목사는 함경남도 함주 출신인데 혼자서 성경을 연구하고 전도하는 생활을 하다가 함흥성경학원에서 공부하고, 이어 1931년에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제26회)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 목사는 처음에는 함주에 있는 북주동교회(北州東敎會)를 담임했고, 1938년에는 덕천교회(德川敎會)를 비롯하여 동덕천교회(東德川敎會) ‧ 기곡교회(岐谷敎會) ‧ 상수리교회(上水里敎會) ‧ 장흥교회(獐興敎會), 다섯 개의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이계실 목사는 대단히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이었다. 함경도는 캐나다장로회가 선교를 담당했는데 캐나다 선교사들은 비교적 자유스러운 신학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목사는 선교사들과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고 한다.

1938년에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에서 대단히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였다. 신사참배를 가결한 27차 장로교 총회가 바로 그것이다. 다른 교파들은 일찌감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고 장로교가 버티다가 손을 들고 만 것이다. 이계실 목사는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담임하고 있던 다섯 개 교회를 이끌고 즉시 장로교 함남노회에서 탈퇴해서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반대하면서 독자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이계실 목사를 따르던 교인들이 경찰에 끌려가서 고생을 많이 했다. 당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하여 신사참배 반대운동가들이 여러분 계셨는데, 이계실 목사는 함경도 지역을 대표하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가였다.

함주에서 거제도와 부산을 거쳐 서울로

해방 뒤에도 계속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다가 6‧25 전쟁을 만났는데 저 유명한 흥남철수 때 5교회 130여 명의 교인을 이끌고 피난길에 올랐다. 경상남도 거제도로 피난 온 이계실 목사와 교인들은 1951년에 덕천연합교회를 설립했다. 덕천연합교회는 피난교회였지만, 성경구락부 ‧ 야간신학교 ‧ 성경학교를 세우고 활기가 넘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1954년에는 교회와 교인 전체가 부산 문현동으로 이전했다.

덕천교회는 어느 교파에도 속하지 않았다가, 한 때는 재건파교회와 연결되어 대한예수교 재건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얼마 안가서 재건파와는 헤어졌다. 1955년에 교회와 교인들이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으로 옮겨왔고, 이 무렵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장로회’라는 교단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장측’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1967년에는 교회 이름을 덕천교회에서 동천교회(東川敎會)로 바꿨다. 덕천교회와 다른 교회들이 있었던 면(面)의 이름을 딴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장측 신학교육기관인 서울성경대학원대학교 건물. 서울 신대방동에 있다. 이 학교는 1952년에 거제도에서 성경학원으로 출발했으며 1999년 2월,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대학원대학교 인가를 받았다.>

북한에 뿌리를 둔 것을 잊지 않는 교회

이계실 목사는 1971년, 81세를 일기로 하늘 나라로 가셨는데 이 목사가 세운 순수한 신앙의 전통은 순장측과 동천교회를 통해서 잘 이어지고 있다.뿌리를 북한에 둔 교회들 가운데 뿌리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진 경우도 없지 않은데 동천교회는 “우리 교회는 함경남도 함주군에 있던 덕천교회를 모체로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교회 연혁에도 덕천교회가 설립된 1921년을 창립연도로 기록하고 있다. 이제 100년 가까운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교회에서는 구역을 ‘목장’이라고 부르는데 북한 목장이 있다. 그리고 통일선교 관련 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덕천교회의 후신인 동천교회의 모습>

덕천교회가 있었던 곳은 지금은 락원군

덕천교회가 있었던 함경남도 함주군 동천면 일대는 행정구역 변화를 심하게 겪었다. 북한은 1952년에 행정구역을 크게 개편했는데 이 때 이 지역은 퇴조군(退潮郡)이 되었다. 그런데 1982년에는 퇴조군을 락원군(樂園郡) 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살기 좋은 사회주의 낙원으로 변화된 군”이라는 뜻으로 이름이 그렇게 된 것이다. 정치적인 색깔이 있는 이름인데 북한에는 이런 곳이 여럿 있다. 락원군에는 북한의 중요한 해군기지가 있다. 풍서리는 주변의 풍동리 ‧ 풍양리 ‧ 대동리와 합해서 풍흥리(豊興里)가 되었다. 함흥이 직할시였을 때는 풍흥리는 함흥직할시 덕산구역에 속해 있었다. 지금의 함경남도 락원군 신풍리 부근이 예전 덕천교회가 있던 곳이다.

이계실 목사는 함주군 기곡면에 있던 기곡교회(岐谷敎會)도 담임하였었는데 함주군 기곡면은 지금은 오로군(五老郡)에 속해 있다.

*유관지 목사. Ph. D. 연세대와 호서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극동방송 이사, 주옥감리교회, 목양감리교회 담임 역임. ‘평화통일과 북한선교’ ‘북한의 종교실태’ ‘기도가 흐르는 3천3백80리 강물’ 공저자. 현 북한교회연구원 원장

유관지  yookj4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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