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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마음의 다산 학문

슬프다 우리나라 사람들 嗟哉我邦人
주머니 속에 갇혀 사는 듯 辟如處囊中
삼면은 바다로 에워싸였고 三方繞圓海
북방은 높고 큰 산이 굽이쳐 있네 北方縐高崧
......(중략)

『술지(述志)』, 즉 ‘내 뜻을 밝히다’라는 제목으로 21세에 다산이 지었던 시의 한 구절입니다. 온몸이 언제나 움츠려서 기상과 큰 뜻조차 펴지를 못하던 민족의 현실을 비탄의 심정으로 읊으면서 주자학 이외의 외국의 문물이나 학문 사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외침이 다산의 시에 담겨 있습니다.

본디 ‘왜구’의 침략으로 고달파하던 신라나 고려 때에도 일본은 언제나 ‘왜’라고 비하했고 병자호란 이후에야 중국인 청나라도 오랑캐에 불과하다고 비하하면서 일본의 학문이나 청나라의 문물에는 관심을 쏟지 않던 사회적 분위기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17세기에 실학자들이 등장하면서 그러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고 18세기 북학파의 학자들이 서양의 학술이 전래된 청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주의가 사회의 전면으로 등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다산 정약용에 이르면 ‘왜’인 일본의 학문과 사상이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다면서 일본의 유학사상에 한껏 마음을 기울이는 열린 자세를 견지하였습니다. 다산보다 더 후대인 추사 김정희에 이르면 청의 문물에 더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조선이라는 조그만 나라에 갇혀 오로지 명나라의 중화 사상만 숭배하면서 일본이나 청나라는 얕잡아 보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던 그러던 무렵에 다산이나 추사는 일본이나 청나라의 학문과 사상의 수준이 얕볼 정도가 아니라 우리보다 더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하면서 그들 나라의 서적을 구입해 검토하고 분석하는 작업에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다산과 추사의 학문적 열린 마음이나 학문적 태도에 대하여 학술적으로 정리해 낸 책이 최근에 간행되었습니다. 임형택 교수가 지은 『한국학의 동아시아적 지평』(2014·창비)이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책의 제2부 「17~19세기 동아시아 세계의 상호교류」라는 제목의 글에서 19세기의 다산과 추사에 주목하고, 당시의 청나라·일본·조선이라는 세 나라를 동아시아라는 권역에 포함하여 이들 세 나라에 ‘이성적 대화’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학술교류의 여러 측면을 고찰하였습니다. 조선의 실학연구를 조선이라는 나라에 국한하지 않고 이웃 나라인 한일·한중·중일의 지평으로 실학연구를 확대해서 정리하는 학술 작업이었습니다.

   
 

21세기, 동아시아에는 외교적 마찰이 빈번하고 일본의 극우 정권이 과거사의 반성은 팽개치고 자국 이익의 극대화에만 몰두하는 지금, 우리 지식인들은 과거의 어렵던 시절에 학문을 통한 ‘이성적 대화’를 했던 역사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학문 경향 속에 한·중·일 3국의 평화와 번영을 염원하는 뜻을 발견하고, 상대방 나라의 학문과 사상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통해 상호 교류가 확대되는 이성적 대화가 가능하다면 꼬일 대로 꼬인 3국의 문제에 일루의 희망이라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다산의 「일본론」이나 일본 학문에 대한 높은 평가는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발호를 예견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왜’의 학문을 높이 평가하는 열린 학문적 자세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박석무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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