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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本末)이 전도(顚倒)된 사회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며,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마르지 않으므로 냇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갑니다.”

세종대왕은 인간의 보편적인 음성을 연구하여 소리와 문자가 상응하도록 하고,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사상과 음양(陰陽)·오행(五行)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철학의 기본적인 패턴을 백분 활용하여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셨다. 세종은 스스로 만든 문자로 「용비어천가」를 지어 선조의 개국 위업을 찬양하고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처럼 조선왕조가 만세토록 유지되는 튼튼한 국가가 되기를 희망하셨다. 조선왕조가 세종의 경천(敬天)·애민(愛民)의 뜻을 잘 받들었다면 용비어천가는 지금도 민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농경문화 속에서 산 선조들은 「용비어천가」가 아니어도, 뿌리와 원천(源泉)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하늘을 만물의 뿌리로 생각하였다. 하늘이 만물을 창조한 초월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만물 공동의 뿌리로 이해한 것은 동아시아 사상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자연을 도의 무궁한 변화로 이해하는 『주역』의 사상은 하늘을 모든 존재의 뿌리로 이해하고 만물의 변화를 뿌리로부터 뻗어나는 가지의 전개, 곧 본과 말로써 자연을 이해하는 동아시아 사상의 원형이다. 우리의 국기인 태극기는 이와 같은 『주역』의 사상을 가장 간단하게 도형으로 만든 것이다.

근본을 중시하는 동아시아 사상

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중시하고, 절대자 여호와의 창조신화를 중시하는 서구의 문화는 일원적 통일성이 아니라 이원론적 사고를 중시하였다. 근대의 산업문명과 과학문명은 이와 같은 이원론적 서구문명의 꽃으로 동아시아의 본말의 문화와는 매우 다르다고 하겠다.

『주역』의 본말사상은 동아시아 사상의 원형으로 이 지역의 모든 문화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논어』에서는 “군자는 근본에 힘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君子務本 本立而道生)”고 하고, 『대학』에서는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다 (物有本末)”고 한다. 개인의 삶에서 국가의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규범을 광범하게 규정하는 유학의 예(禮)는 흔히 형식적인 것으로 비판되기도 하지만 그 근본정신은 역시 근본중시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만물은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은 조상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이 시조에게 제사 지내며 상제를 함께 모시는 까닭이다. 교외에서 상제에게 제사 지내는 것은 근본에 대한 보답과 시작에 대한 반성을 중시하는 것이다 (萬物本乎天 人本乎祖 此所以配上帝也 郊之祭也 大報本反始也)”
“예는 근본을 돌이키고 옛것을 닦아 그 처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禮也者 反本修古 不忘其初者也)”

뿌리와 근원의 중시는 농경사회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 문화가 체험하고 성찰한 문화의 총체이다. 거기에는 철학과 진리관과 학문관이 모두 포괄된 거대한 사상과 문화의 체계이다. 과거 백 년 사이에 동아시아의 지식인과 위정자들은 이를 너무 쉽게 망각하고 무시하고 부정하며 서구문화의 수용과 학습에 몰두한 것이다.

덕과 재물의 관계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두 가지는 인간적 가치와 재물의 소유이다. 가치는 하늘과 인간의 본성에 기초하고, 소유는 땅과 인간의 육체에 속한다. 이 두 가지의 조화는 삶의 영원한 숙제이다.

“부자가 되려고 하면 어질지 않게 되고, 인을 행하려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爲富不仁也 爲仁不富矣)” [『맹자』‘등문공상’]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논어』 ‘이인’]

인의의 가치는 천리로 존중되고 재물에 대한 욕망은 인욕으로 묘사되었다. 수양을 통하여 자기완성을 추구하는 유학자들은 인욕을 극복하고 천리를 실현하는 것을 수양의 과제로 여겼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굽을 베개로 삼아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않게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논어』 ‘술이’]

부귀의 유혹은 학자들이 넘어야 하는 높은 재와도 같았다. 선비들은 ‘마음이 외물의 지배를 받으면 새와 짐승처럼 된다’고 여겨 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평천하’를 이상으로 삼는 『대학』에서는 덕과 재물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덕은 근본이며 재물은 말단이니, 근본을 도외시하고 재물을 중심으로 삼는다면 백성들을 다투게 해서 서로 빼앗게 할 것이다.(德者 本也 財者 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유가경전에 나오는 덕과 재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대학』의 기본정신을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서구화, 과학화, 근대화, 세계화 등의 표어 아래 서구의 선진문물을 수입하는데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돈보다 덕을, 바깥보다 안을, 몸보다 마음을, 위정자보다 백성을 중시하는 본말 사상의 진의를 외면하는 사이에 우리 사회는 본말이 거꾸로 된 세계가 되었다.

이광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이광호  kwangtig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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