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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국무총리 낙마를 보며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

동양의 정치학 요체는 정말로 간단합니다. 『대학(大學)』이라는 경서에는 ‘용인(用人)’과 ‘이재(理財)’가 세상을 경륜할 수 있는 요체라고 했습니다. 인재만 제대로 구해서 등용하여 국부(國富)의 증진에 노력하여 효과가 나온다면 세상의 큰일은 해결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임금들, 그렇게 열심히 사서오경을 암송하고 그렇게 많은 학자들을 불러다가 궁궐 안에 경연(經筵)을 열어 통치와 경세의 학문을 배웠건만, 그들이 대부분은 ‘용인’에도 ‘이재’에도 실패하여 끝내 나라는 일본에게 먹히고 말았던 비운을 당해야 했습니다.

조선 전기 세종대왕이나 후기의 정조대왕은 그래도 용인이나 이재에 상당히 성공했습니다. 세종 시절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집현전’을 통해 배출되어 세종을 보필했고, 정조 시절 출중한 인재들이 ‘규장각’을 통해 배출되면서 나라가 상당히 융성하던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을 이은 임금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고, 정조 또한 49세라는 짧은 생을 마치는 불행으로 다산 정약용 같은 인재는 18년의 귀양살이라는 간난신고의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1804년경으로 추정되는데 강진 읍내에서 귀양 살던 다산은 근심과 걱정을 날려보내 자신의 마음에 평정을 찾으려고 「견우(遣憂)」라는 12편의 연작시를 지었습니다. 그 마지막 시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백성들 굶주려도 날 원망 못할 거고 / 民飢不我怨
백성들 사나워도 내 알바 아니네 / 民頑我不知
뒷 세상에 나를 논평하는 사람들 / 後世論我曰
뜻을 펼 수만 있었다면 무엇인가 했을 거라고 / 得志必有爲

귀양살이하느라 자신의 고통을 이기기에도 힘든 유배객에게 무슨 책임이 있다고 누가 그를 원망할 거며, 백성들 거칠어져 서로 싸움질을 해도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내용에서 버림받고 살아가는 인생의 비탄을 노래했습니다.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위대한 역량을 지녔건만 귀양이나 살았던 다산, 그를 등용했다면 필연코 세상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후세 사람들이 탄식했을 것이라는 말에, 자신의 준비된 인생을 은근히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현 정부에 들어와 벌써 두 번째로 국무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뉴스를 들으면서 세상에 그렇게 인재가 없다는 것인가라는 탄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도처에는 참다운 인재들이 많기도 하건만 다산처럼 발탁을 해주지 않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학벌이나 지역은 물론 여․야를 떠나 전국적으로 수소문하여 인재를 골라낸다면 총리감 하나 못 구하겠습니까. 세종이나 정조처럼 조건이나 당파를 떠나 진짜 인물을 등용하여 세상 좀 바로잡아주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요. 세월호, 장성 요양병원 사건 등 억울한 죽음들만 줄을 잇는데, 언제까지 인재 등용의 난맥상만 연출하고 있을 것인가요.

쪼만하고 협소하기 짝이 없는 ‘수첩’ 정도야 그냥 찢어버리고, 마음과 대문을 확 열어젖히고 참 인재를 골라 나라 조금 구해준다면 어떨까요.

박석무/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박석무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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