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충청도 수안보의 북바위산 석문봉에도 지금 오색단풍이 찬란하다. 지난 겨울, 나는 그 산들에 둘러싸인 눈 덮인 고운리 계곡을 보면서 이 엄동설한에 약초는 고사하고 과연 살아남을 생명이 어느 하나라도 있을 것인지 염려 아닌 염려를 한 기억이 새롭다.

대자연의 위대함을 감히 내 좁은 머릿속으로 가늠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랴. 그래서 나는 고운리 계곡 여기저기에 1천여 종의 약초를 심고, 그 모든 약초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자미원’이라는 농장을 세워놓고는 철마다 변하는 대자연의 조화와 섭리가 놀라워 하루에도 몇 번씩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듯 이 가을을 표출하는 찬란하기 만한 저 고운리 단풍은 곧 대지위로 떨어져 뒤에 오는 생명들을 위해 스스로 썩는 거름이 될 것이다. 치밀하게 짜인 회로 설계도에 의해 아침이면 고운리 동쪽 석문봉 너머에서 태양은 솟아오른다. 낮에 잠시 계곡에 머물다 저녁이 되면 그 태양은 서쪽 적보산 너머로 다시 사라져 가고, 그 사이 어두움을 시샘하는 별과 달의 순환은 그저 경이롭기만 한 곳이다.

그 안에 영겁의 무수한 생명이 있으리라. 그 생명은 분명 해와 달과 별의 계획에 따라 태양과 구름과 바람과 비와 이슬과 서리가 만들었을 것이다. 그 지구 자전의 변화와 우주 공전의 순환 역사는 아마 니체(Friedrich W. Nietzsche)가 말한 ‘영원회귀(The eternal return produces becoming-active)’를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야생에서 연단된 살아있는 약초를 고운리 자미원에서 정성스레 캐려 한다. 대자연의 위대한 힘을 약초에 고스란히 담아내겠다는 의지다. 사람의 힘이 아닌 야생의 힘으로 길러내는 약초야말로 진정한 우주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야생(野生)농법에 있다. 물론 내가 배운 야생농법은 일본의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가 제창한 4무(四無)의 자연농법과 추구하는 원리는 비슷하다. 따라서 남들은 유기농법을 말한다지만 나는 야생농법을 고집하고 있다.

야생농법이나 자연농법의 힘은 이미 국내에서도 과학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상지대학교 한의과대학 침구학교실 연구팀(장해영 등)은 2009년 “자연산 산삼, 산양삼 및 인삼의 항산화능 비교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항산화능이란 활성산소를 제거할 수 있는 항산화능력을 말할 것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자연산 산삼(연변에서 채취된 20~30년생 추정), 산양삼(충남 서천농장 10년생) 및 인삼(강원도 홍천 5년근)의 항산화능력을 비교한 것이 주 내용이다.

용어 자체가 전문적이라 익숙하지는 않지만 연구 결과를 그대로 소개해 본다면, 총산화능(TAC), 활성산소 흡수력(ORAC), 총페놀양은 산양삼, 산삼, 인삼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또 항산화 활성능력 측정(DPPH) 라디컬 소거능은 산삼과 산양삼간에 차이가 없었다.

또한 TBARS(조직이나 세포내 소기관 부유액의 산성화 반응물)농도로 측정한 지방과산화과정 및 디클로로플오렛신(DCF)형광 강도는 산삼, 산양삼, 인삼의 농도가 증가함에 따라 감소하였고, 인삼의 TBARS농도가 나머지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내린 최종 결론은 산양삼이 인삼 보다는 우수하며, 산삼과 유사한 항산화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산양삼(山養蔘)이란 이른바 장뇌삼이라고도 한다. 진짜 장뇌삼이란 인간이 씨를 뿌렸지만 자연환경 그대로의 산에서 재배한 삼을 말한다. 대신 인삼(人蔘)이란 보통 밭이나 논에서 농약과 비료로 재배한 삼이며, 산삼(山蔘)이란 인간의 힘이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나서 자란 삼을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세 종류의 삼을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만 DNA(생물학적 구성 설계도)상으로는 동일한 식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산양삼이 산삼에 비해 약효(항산화능)가 결코 손색이 없다는 연구결과는 고운리에서 자연 그대로의 방식으로 재배하는 자미원 약초에 대한 자부심을 충분히 느끼게 하고도 남는다.

대구대학교 한의과대학 연구팀(금성진 등)이 2004년 발표한 “산삼, 장뇌삼, 인삼의 항암효과에 관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항암효과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에서 산삼이 가장 뛰어났으며, 그 다음으로 장뇌삼, 인삼의 순이었다.

이 연구들은 산삼이 장뇌삼에 비해, 장뇌삼이 인삼에 비해 약효가 좋다는 일반적인 통설을 증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그 같은 구분이 과학적으로는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고운리 산야에서 피어나고 자라는 수많은 약초들을 보고 대자연의 위대함에 고개를 절로 숙이고 있다. 약초의 약효는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이 주는 하늘의 선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11월의 수안보에도 막바지 가을이 오면 단풍은 찬바람에 약초위에 떨어지고, 봄이 오면 얼어붙는 겨울 땅을 깨고 솟아나는 약초의 새싹들을 나는 경외감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서 추구하고 있는 야생농법은 대자연을 존중하여 그 섭리규범에 순응한다는 천지인(天地人)조화 방식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흙의 위대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키는 원리로 일반적인 자연농법이 추구하는 생산성의 저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자연 그대로’를 주장하는 일본의 4무 자연농법 주창자들은 무경운-밭을 갈지 않는다, 무비료-비료를 주지 않는다, 무제초-풀을 뽑지 않는다, 무농약-농약을 치지 않아야 한다는 농업을 강조하고 있다. 그 같은 자연농법이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생태계를 보전, 발전시키면서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유기농업, 즉 합성화학물질인 농약, 화학비료, 제초제, 가축사료 첨가제 등을 최소한으로 사용하여 동식물성 유기물을 토양에 환원시킴으로써 지력을 유지증진 또는 회복시키는 농법을 더 자연친화적으로 발전시킨 개념이다.

하지만 나는 야생농법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건강을 목적으로 재배하는 약초일수록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자연 그대로’가 아닌, ‘토지 그대로’의 방식이다. 살아 있는 흙의 위대한 능력을 최대한 발휘시킴으로써 생산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연농법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사람 손이 가지 않은 관계로 수확량이 크게 저하되고, 그 가격이 금값이라면, 그것은 약초에 부여된 인간의 건강증진이라는 보편적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다.

특히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약효가 좋다는 산삼도 결국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수요자에게 공급할 수 없고, 공급하더라도 돈 많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人), 즉 홍익인간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얘기가 된다.

그래서 수안보 자미원은 산삼(山蔘)을 기르는 자연농법이 아니다. 대신 산양삼(山養蔘)을 기르는 방식과 같은 야생농법이다. 귀향농업인이기도 한 나는 이 방식을 언젠가는 체계적으로 후배 농업인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야생농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인(人)을 위한 ‘천지인의 조화’이고, 우주와 자연이 순환하는 ‘영원회귀’의 세계관이다. 니체가 지적한 영원회귀의 기본정신, 즉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는 인생관을 나는 적극 지지하기 때문이다. 야생농법은 결국 ‘후회 없는 삶’을 위한 홍익인간들의 생활철학이다.

노규수_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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