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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수준다산연구소 실학산책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국민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뜻밖의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보름 이상이나 계속된 이 사건의 처리 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첫 번째의 놀라운 일은 조난 직후에 일어났다. 그 난파선에 타고 있던 학생들은 침수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교사의 지시와 방송의 지휘 사항을 순수하게 따랐다. 이들은 위기를 관리해 줄 선박 뱃사람들의 양식을 신뢰했다. 분명 물론 그들의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졌지만, 침착과 질서를 종용했던 스승의 말도 따랐던 학생들의 자세는 단연 일등 국민감이다. 이 위기 중에서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결정한 교사들도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려는 투철한 자세를 드러내 주었다.

배신당했지만 기억해야 할 신뢰, 양보, 봉사

바닷물이 차는 선실에서 자신의 구명동의를 친구에게 양보하고 다른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생을 마친 아름다운 학생도 있었다. 그는 우리 국민의 수준을 끌어 올려준 자랑스런 아들이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한 학생은 난파선에서 구조선으로 옮겨 타는 과정에서도 어린아이를 돌보며 그를 먼저 올려보냈다. 이러한 행동들은 비극적 해난사고 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앞날에 희망을 제시해 주었다. 그 지옥도와 같은 위급상황 속에서 탈출에 성공한 모든 이들도 그 배에 타고 있다가 유명을 달리한 2백여 명의 학생들처럼 질서를 지켰던 사람들이다. 그들 또한 현재 우리의 희망이 되었다.

세월호가 45도 가까이 기울어져서 곧 침몰하게 된 상황을 무릅쓰면서 난파선에 바짝 붙어서 생령들을 구했던 자그마한 어선들의 어부들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죽음의 공포까지도 이길 수 있음을 실증해 주었다. 물론 그때 해경의 경비함은 세월호에서 한참 떨어진 바다 위에 죽음을 두려워하며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어부들은 침몰하는 6천여 톤 철선 옆에서 하나의 생명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자신을 내던졌다. 그들이 진정한 국민의 지팡이요, 국민을 위한 봉사자였다. 그들의 용기는 이제 우리 국민의 담대함을 드러내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다.

민간자원봉사 다이버들은 물에 잠긴 배에 갇혀 있을지도 모를 승객들을 위해 모든 일을 제치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비록 ‘해경의 곱지 않은 눈치’ 때문에 애를 먹으면서도 현장을 지키며 입수의 기회를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실종자의 가족들을 돕기 위해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름 없는 봉사자들은 우리 국민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물에 젖은 시신을 미리 주물러 펴고 깨끗이 닦아내는 봉사자들도 고마운 분들이다. 궂은일을 떠맡아 묵묵히 일하는 봉사자들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가꾸어주는 분들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진도 현장의 주민들이나 각 도시에 설치되어 있는 문상 장을 찾아 조문하는 그 많은 시민들도 어려움을 겪는 이웃과 함께하려는 연대의식을 드러내 주었다. 이들 모두는 우리의 성숙한 미래를 보장해줄 또 다른 성자요 영웅들이다.

과연 누가 미개하고 야만이었나

어느 유력한 정치인의 아들은 말했다.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가 미개하다”고. 그러나 이 위대한 국민을 보라. 누가 이들을 미개하다고 했는가.  누가 이들의 나라를 미개국이라고 규정했는가.  사물을 판별하고 자신의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충분한 나이의 청년이 어찌하여 이러한 망발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는가.  이는 지도층이나 그 자제들의 수준을 나타내는 말일 뿐인 것이다. 국민은 결코 미개하거나 야만스럽지 아니했다. 그러나 이 국민의 위대함이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이기기에는 너무나 힘에 벅차다.

   
▲ 진도 팽목항에서 경찰 등 봉사자들에게 간식 등을 나눠주고 있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원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그렇다면 세월호 사건은 왜 일어났는가.  그것은 한 줌 안 되나 막강한 힘을 구사하는 우리 사회의 야만 때문이다. 이 야만들은 성장제일주의의 신화에 따라 황금만을 숭배한다. 또한 현대의 야만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불법과 불의에 눈을 감고, 책임을 떠넘길 희생양을 찾을 줄도 안다. 그리고 공약을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무시하며, 자신의 직책에 대한 책임의식과 윤리성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장주의, 성과주의에 찌들어 사람의 생명과 행복을 뒷전에 두고 있다. 국민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일이 있을 때면 경제적 효과를 곧잘 계산해 내던 약삭빠른 부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이번 사건이 가져올 부(負)의 경제효과를 계산해낼 용기가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2백여 년 전 다산 정약용 선생은 “양들이 힘을 모아 시랑이를 쫓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 이처럼 무섭고 힘 있으며 수준 높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 야만들이여, 제발 국민을 봉으로 알기를 그만 그쳐주기 바란다.

조광/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

*이 글은 (사)다산연구소와 유코리아뉴스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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