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 대표이사)
50여 년 전의 일이다. 영국의 한 노신사가 한국을 방문하고 파고다 공원을 들렀을 때 할아버지와 손자의 다툼(?)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마침 노인 여러 명이 빙 둘러 앉아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손자가 할아버지의 팔을 잡아끄는 것이다.

“할아버지 엄마가 진지 잡수러 오시래요.” “야 이 녀석아 밥이고 뭐고 장기 질 판이다.”… 할아버지의 어깨를 비비며 집에 가자고 보채는 ‘손자’와 장기가 질 판이니 좀 기다리라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영국의 노신사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비록 한국이 지금은 전란으로 폐허가 됐지만, 이 나라는 머지않아 선진국가로 도약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적인 관점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에 이르는 한국의 효(孝)사상과 가족제도를 관찰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차 한국이 인류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 사상 일 것이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지구에서 꼭 가지고 가야할 제일의 문화는 한국의 효 문화다”

그 노신사가 바로 ‘도전과 응전’을 말한 세계적인 대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1975)다. 말년의 토인비는 ‘노인의 쓸쓸함’을 토로하며 한국의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인류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별로 가더라도 효 문화는 필히 살려야 하는 모럴이었다. 인간의 순리(順理)이기 때문이다.

그 순리를 우리 한국의 전통사상에서는 ‘조화와 질서’라고 한다. 바로 한국인의 ‘~답다’정신이다. 부모는 부모다워야 한다.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며,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또 대통령은 대통령다워야 하고, 국회의원은 국회의원다워야 하며, 국민은 국민다워야 한다.

그렇게 성립한 인간관과 국가관이 충(忠)과 효(孝)의 개념이다. 충(忠)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고, 내 자식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내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내 가족을 부양하는 삶의 원천인 내 직장을 지켜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애국심과 애사심이란 결국 나와 가족을 위한 ‘가장(家長)다움’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 ‘다움’을 한(韓)사상이라고도 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철학이다. 산이 산답지 못할 때, 물이 물답지 못할 때 이 세상은 부조화와 부조리의 사회로 변하고 만다. 질서는 깨지게 된다.

따라서 산은 산이어야 하고, 물은 물이어야 한다. 자신의 본분을 착각하거나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부모는 부모여야 하고, 자식은 자식이어야 하며, 사장은 사장이어야 하고, 사원은 사원이어야 한다. 국가는 국가여야 하고 국민은 국민이어야 한다.

그렇게 명확한 ‘주제파악’을 통해 발전을 추구했던 충(忠)과 효(孝)의 역사가 우리 민족의 정신적 근원이 되어 왔다. 중국이 도(道)사상을 발전시켜 왔고, 일본이 화(和)의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면, 우리 한국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발전에서 탄생시켜온 것이 바로 한(韓)사상으로 집약되는 ‘조화와 질서’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말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와 질서는 ‘대칭’이다. 대칭은 평등이 아닌 ‘어울림’이다. 마주보고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에너지(전위)를 전달하는 것, 그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이룬다.

그래서 ‘미인대칭’이라는 공식이 만들어 졌다. 단지 외모뿐만이 아니다. 그 원리를 응용해 성격이나 대인관계에서도 미인대칭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미=“미소 짓고”, 인=“인사하고”, 대=“대화하고”, 칭=“칭찬하라”가 사회생활에서 미인이 되는 제1조건이다.

반면, 서구사회의 중심 사상은 ‘자유와 평등’이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이 보여주듯이 유럽과 미국의 현대사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며 발전해왔다.

그 ‘자유’가 현대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국가의 간섭이 없어도, 즉 개인의 자유에 맡겨도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이론을 폈다.

오히려 국가의 간섭이 있을 때보다 개인의 자유에 맡겨 놓았을 때가 더 경제적 안정과 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한편 ‘평등’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됐다. 투표에 있어서 누구나 한 표를 갖는다는 평등권이 바로 인간의 기본권이다. 그래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이 바로 헌법에서 규정한 평등권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 사상이 잉태한 서양문화의 귀결이다. 아담스미스 스스로 말한 자유주의경제학이라는 것이 결국은 ‘개인 이익의 우선’에서 도출된 것이었으니까.

아담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 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규정했다. 그렇게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것이 바로 전체 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라는 뜻으로 고착됐다.

결국 그 같은 논리에 의해 1980년대에 들어 자유주의경제학은 신자유주의경제학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영국이라는 강대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제적 약소국의 무역장벽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졌고, 이에 찬성할 수 없다는 중남미 각국에서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기를 든 좌파정권들이 속속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듯 자유와 평등이라는 서구적 가치관은 각처에서 어울림의 미학을 변질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인류 역사의 발전단계에서 ‘자유와 평등’(서구사상)의 도전에 ‘조화와 질서’(한사상)가 효율적으로 응전하지 못한다면 말세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새로운 21세기 역사는 서구사상과 한(韓)사상이 극렬하게 대립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즉 ▷노사가 평등한 사회와 노사가 조화를 이루는 사회 ▷남녀가 평등한 사회와 남녀가 조화로운 사회 ▷아버지와 아들이 자유로운 사회와 부자지간의 질서가 엄정한 사회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사회와 신과 인간이 조화하는 사회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자유로운 문명과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문명의 대립이다.

마침 ‘3.1운동’에 대해 모르는 자식들을 위해 부모들이 역사교육을 해야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중고등학교에서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대입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한 방송사의 거리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에게 ‘3.1운동’에 대해 물으니 ‘삼점일운동?’이라고 답하고,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질문에는 ‘야스쿠니 젠틀맨?’이라고 되묻는 청소년들이 예상외로 많더라는 것이다. 충(忠)과 효(孝)의 현대적 교육을 위해 이제 정부가 정부답게 나온 것이다.

우리의 전통 사상에서 ‘조화와 질서’가 승리하면 개벽(開闢)이 온다고 했다. 개벽은 ‘새로운 가치’의 탄생이다. 그 탄생지는 분명 우리가 사는 이 땅 한국이 될 것이라고 나는 분명히 확신한다.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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