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한국 박솔리 기자] 5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오며 스스로 행복을 자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박준뷰티랩 박준 회장이 올해로 미용 50주년을 맞았다. 가위라는 하나의 도구로 쉼없이 거름을 얹고 비바람, 눈보라를 견뎌냈던 작은 묘목은 드디어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이젠 급할 것도 크게 바랄 것도 없다. 감사의 마음이 깃든 봉사로 사회적 유익한 거름이 되면 충분하다. 그는 다사다난 했던 미용 인생을 <자서전>으로 담담하게 읊조리려고 한다. 후배들에겐 도움이 되는 선배의 길을 찾고 싶어 <장학재단>도 곧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다. 박준의 50주년은 새로운 시작이고 시들지 않는 미용의 숲이다.

 
 

#1972년 시작된 대한민국 1호 남성 미용인

“그저 좋아서, 내 예술성을 표현하고 싶어서”

땅끝마을에서 서울이란 도시에 스스로 던져졌다. 모험이 필요했다. 어릴 적부터 독특하고 창의적인 소년이라 불렸지만 예술성과 꿈을 펼치기엔 지역적인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14세에 마주한 미용계는 다른 직업군과 달리 여성보다 남성이 사회적인 시선이나 위치로 취약했다. 소신 있게 묵묵히 나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고 국제 대회에서 수상하며 실력 있는 미용인으로 인정받았다.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과 남성 미용인 1호라는 타이틀로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했고 80년대 ‘박준 미용타운’을 시작으로 현재는 전국 100여개의 ‘박준뷰티랩’ 회장까지 그야말로 거침없이 달려왔다.
 

#아직 가위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

“영원한 미용계 오빠라 불리고 싶다”

사업가와 회장이라는 존칭보다 ‘헤어 디자이너’ 박준이 아직도 익숙하고 행복하다. 내가 아니면 머리를 하지 못하고 몇 달이라도 기다리는 고객이 많고 40년 가까이 된 분들도 있다. 가위를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다. 고객들을 만나며 트렌드에 변화된 스타일링도 필요하지만 나만의 고유한 방식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미용인으로 거듭난다는 생각이 확고 해진다. 몇 십년 동안 변치 않는 박준의 고객은 이미 마음만으로도 가족이 되었다. 진심으로 고객에게 스타일을 찾아주고 인정받다 보면 미용인으로서 정체성이 더욱 선명 해진다.

#50주년 현재의 박준은 평온하고 행복하다

“정리와 휴식,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의 시간 그리고 나눌 수 있는 기쁨”

사람은 뒤를 돌아보기가 쉽지 않다. 앞만보고 나아가다 정체기가 오면 쉽게 좌절하고 늪에 빠지게 된다. 나에겐 이런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과거를 되새기고 정리할 시간들에 대한 부재. 그렇지만 이제 깨닫게 됐다. 내려 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요즘 가장 재밌는 취미는 하루 만보 정도의 ‘걷기’다. 한창 비즈니스로 바빴을 때 자동차는 내 두 다리보다 믿음직스러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계절, 아니 날마다 다른 나뭇잎이 얼마나 예쁜지, 차로 절대 닿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장소, 새들이 노는 소리의 아름다움, 이 모든 것들이 진정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괴롭고 힘든 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지칠 때까지 걸어 보기를 권한다. 어느새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봉사는 나의 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게 하는 것’

“가위 하나로 전 세계 어디든 도움의 손길 뻗힐 수 있어”

고독한 편견의 섬 소록도는 나에겐 은빛 가위 날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곳이다. 미용인의 가치와 보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희망의 섬으로 10여년째 미용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엔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5~6개월 거주한 적도 있을 정도로 소록도 사람들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 곳 친구들이 팬과 같은 마음에 상을 만들어 준 적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봉사란 ‘주는 기쁨’만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보상에 익숙한 요즘 시대엔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받는 이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 봉사의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또 무조건 나의 봉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예전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고 했지만 두 손은 물론 두발도 알아야 선한 영향력을 크게 전파시킬 수 있다. 미용인은 가위 하나만 있으면 전세계 어디든 봉사의 현장이 될 수 있다. 기술이 고맙고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년간 코로나 이슈로 소록도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항상 애틋하다.

 
 

#장학재단 설립으로 새로운 인생, 그리고 자서전으로 전하는 50년

“후배 양성에 주력, 경영은 한 걸음 뒤에”

현재 박준 회장은 그동안 박준 뷰티랩을 성장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경영을 내려놓기로 마음먹고 2세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35년간 자리를 지켰던 청담 본사를 정리하고 신사동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겉보기엔 화려한 건물주로 살며 속내는 항상 어렵고 불편했지만 놓아 버리니 진정한 행복이 찾아왔고 근심걱정 없이 소탈 해진 스스로의 현재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평온하다. 후배들이 든든하게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장학재단을 설립으로 장학금 제도를 대폭 확대해 최소한 가난으로 실력과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할 생각이다. 코로나 등 침체된 미용 경제에 관련 행사 등을 다시 부활해 수익금 또한 장학금으로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 중에 있다. 현재 서경대학교 박준 학과가 있고 한성대학교에 새롭게 박준 학과를 신설했다. 이 또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나의 미용 외길 50년은 최초와 최고의 수식어를 얻었고 반면에 외롭게 묵묵히 걸어온 수많은 기록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된다.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오늘의 내가 새롭고 감사하다. 박준은 영원히 지지 않을 미용계 청춘이자 오빠다.

“지금 누가 가장 행복할 것 같나요? 바로 접니다. 그리고 이젠 후배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박솔리 기자 solri@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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