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통해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세상을 만나 꿈과 희망을 펼치고자 나름 도전에 나서서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쓴다.

오늘날 비트겐슈타인이란 이름은 종종 천재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금수저이자 히틀러와 고교 동창인 그에게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누구라도 인생이란 자신의 세계관에 좌우되기 마련인데, 그의 저작과 함께 인성에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철학자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주목할 만하다.

하이데거처럼, 비트겐슈타인도 그의 사상이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에는 <논리철학 논고(1921)>가, 후기에는 <철학적 탐구(1953)>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 오스트리아 및 영국의 철학자. 1900년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 그가 쓴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 탐구》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서적 상위 5위권에 모두 선정된 바 있다.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인재로도 알려져 있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 오스트리아 및 영국의 철학자. 1900년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 그가 쓴 《논리철학 논고》와 《철학 탐구》는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서적 상위 5위권에 모두 선정된 바 있다. 논리 실증주의와 일상 언어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인재로도 알려져 있다.

 

◇ 문제는 언어다

 

언어가 없으면 표현할 길이 없기에 언어가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으나, 동시에 그 집은 자신을 유폐시키는 감옥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철학적 문제가 언어를 애매하게 사용하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되므로 언어를 명료화함으로써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철학에서 언어의 미사여구(거품)를 빼고 언어의 참 모습을 보이고자 했다. 고로 그의 저작은 자연과학처럼 간단명료하다.

즉 그에게서 세계는 언어이고, 언어는 곧 세계다. 그러나 세계에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기에 이들을 제외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는데 이것이 바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 것이란 선험적인 본질을 강조하는 형이상학이나 윤리ㆍ종교ㆍ예술 등을 말한다. 이는 과학(논리적 실증)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컨대 전기의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다루는 언어는 논리중심의 '기계언어'라 할 수 있고, 그 내용은 한마디로 '그림이론'(진리함수론 포함)으로 볼 수 있다.

 

◇ 논리철학 논고 : '언어는 사실들의 총체'

 

이 책에는 논증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자명한 것으로 여겨지는 선언적 진술이나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진술들은 7개의 주요 기본 명제들로 순서가 매겨져 있으며, 각각 명제에는 하위단계로서 해당 명제에 대한 의견이나 보충설명이 들어가 있다. 고로 모두 합해서 총 526개의 순번진술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7개의 주요 기본 명제는 아래와 같다: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일어나는 것, 즉 사실은 사태들의 존립이다.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생각)이다.
사고는 뜻이 있는 명제이다.
명제는 요소명제들의 진리함수이다(요소 명제는 자기 자신의 진리함수이다).
진리함수의 일반적 형식은 *수식이다. 이것이 명제의 일반적 형식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수식(기호) ; 진리함수들 간의 진위표 등을 포함함
▲ *수식(기호) ; 진리함수들 간의 진위표 등을 포함함

 

부연하면, 이 책은 언어의 본질 및 그 기능과 구조를 탐구하는 것이며, 논리학의 본질과 언어와 세계의 연관성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그 결과, "세계"의 대상(원자사실)<사태<사실이 "언어"의 이름<요소명제<복합명제와, 구조적으로, 각각 대응되기에, 언어는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인 것이다.

 

특히 그림이론은 두 개의 물음에 대한 해답으로 구성되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어떻게 명제를 이해할 수 있는가?'
       – (명제) 그림이론

둘째. '명제의 진리 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 (명제) 진리함수론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명제와 그림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림을 봄으로써 우리는 그것이 어떤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으로부터 그 상황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림은 그것이 표현하는 바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제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것이 나타내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명제로부터 그 상황을 읽어 낼 수 있다. 명제는 그 의미를 ‘보여 준다’. 즉 명제는 사물이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다. 이 점에서 명제와 그림은 서로 공통된 요소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명제의 진리 값은 사실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한다. 이것은 언어 그림이론의 귀결이기도 하다. 명제가 사실의 그림이면 그 명제가 바른 그림인지 틀린 그림인지는 사실에 의하여 결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것의 진리 값은 사실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한편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착한 일이다.'라는 명제는 그림이 그려지지도 않고 사실도 확인할 수 없다. 이처럼 '가치'에 대한 명제는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고로 비트겐슈타인이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최종 명제인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책 속에서 계속해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려 하였으며 ‘말할 수 있는 것’만은 언어 그림이론을 통해 증명하려 하였다.

또 ‘말할 수 없는 것’을 내버리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여지는 것(Showing)”이요 “드러나는 것(Expressing)”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즉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 바깥에, 말할 수는 없지만 “보여지는 것”의 영역이 있음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말할 수 있는 ‘사실’의 영역과, 말할 수 없는 ‘가치’의 영역이 공존하고 있지만 서로 융합될 수 없다는 것('언어와 非언어의 융합불가 원칙')을 의미한다. 또한 명제(의 의미)는 無시간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명제의 그림이론과 진리함수론을 바탕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우리에게 언어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사물도, 본질도, 실존도 아닌 사실들의 총체가 언어이자 (그 언어로 묘사되는) 세계임을 역설했다.

모든 것이 과학적인 세상에서 언어를 통해 그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당신이 유빕이다.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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