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환경에 있는 친지간일수록 콩 한 톨도 나누어 먹는 것이 정(情)입니다. 그래야 한(恨)이 없는 다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주) 대표>

우리는 밥상 주변을 빙 둘러싸고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일상입니다. 공동체 밥상문화지요. 주식인 밥과 국은 개인별로 구분하지만, 반찬은 대부분 공동 소유제죠. 찌개도 한 그릇에 담아 여러 사람이 함께 떠먹습니다. 

‘감성적 식문화’입니다. 식당에서도 부족한 반찬은 더 달라고 합니다. 여럿이 먹으니 당연히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식당 주인도 정답게 기꺼이 리필해줍니다. 

하지만 일본은 다릅니다. 1인분 밥상문화로, 반찬을 사람 수대로 골고루 나누어 먹는 개인별 소유제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혼자 밥 먹는 ‘혼밥족’들에게 일본식 ‘1인분 식기’가 인기라고 하죠. 

상대적으로 ‘이성적 식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당에서 부족한 반찬을 더 달라고 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개인별 할당량을 넘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책임은 먹는 사람이 져야한다는 논리여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정나미가 떨어집니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한국과 일본은 분명 형제의 나라입니다.

지난 2005년 한국과 미국 SNP연구협의체인 ‘SNP컨소시엄(TSC)’이 발표한 ‘고밀도 인간 유전체의 단일염기 다형성 지도’에 따르면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체 차이는 5.86%로 세계에서 가장 작았습니다. 그 대신 한국인과 중국인의 차이는 8.39%, 일본인과 중국인의 차이는 8.61%였습니다. 

하지만 밥상 문화에서 보듯 한일 양국의 문화적 의식 격차는 큽니다. 생활환경에 대한 적응력과 교육의 영향 때문이겠지요. 

그 차이에 대해 1990년대 일본에서 종합상사원으로 주재했던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어느 강연에서 “한국은 정(情)의 문화이고, 일본은 연(緣)의 문화”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 진출할 경우 일본인들과의 비즈니스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가 겪은 실증사례인데, 일본인들은 연(緣)이 끊어지면, 언제 보았느냐는 듯 서로 무감각한 관계가 된다고 합니다. 냉정할 정도라네요. 일본인 지인을 길에서 만났는데, 분명히 눈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인사도 없이 그냥 가더라는 겁니다. 거래관계가 끊어진 회사 직원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학창시절에 읽은... 여주인공 아사코와 맺은 피천득의 수필 ‘인연(因緣)’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 관계는 그렇게 실뜨개처럼 연결고리의 유무를 따지는 연(緣)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 한국인은 못 보면 보고 싶어 죽는 정(情)의 관계를 중시합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서 보듯,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나가도 그들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침착히 대응합니다. 한국인들과 같이 정(情) 때문에 땅을 치고 절규하며, 관공서로 달려가 당장 살려내라고 울부짖는 광경이란 찾아 볼 수 없지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정 떨어지는 인간’이라는 표현은 가장 큰 욕입니다. 한국에서 그 정(情)은 밥상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먹는 것 같고 차별하는 것은 ‘정 없는’ 짓이라 가장 큰 설움을 준다고 하네요. 

그처럼 정(情)의 어원은 마음(心)과 살갑다(靑)의 합성으로 풀이합니다. ‘살갑다’는 내 살(肉)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이지요. 그것이 친근함을 나타내는 정(情)입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건으로 하청 공급업체 사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많은 승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지 못했다는 죄의식 때문이겠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기업의 하청관계, 갑을관계를 이제는 심각히 재정비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같은 밥상에 빙 둘러 함께 먹는 감성적 식문화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 먹고살려고 하는 짓”이라는 관용적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것이지요. 같은 환경에 있는 친지간일수록 콩 한 톨도 나누어 먹는 것이 정(情)입니다. 그래야 한(恨)이 없는 인생, 다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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