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바꿔치기로 양반가에서 딸을 키우려 했던 표마리아... 하지만 정작 필요했던 건 情이었다.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 대표>
▲ 노규수 <법학박사. 해피런 대표>
자녀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은 지극하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는 이유 자체가 자신의 삶을 희생하더라도 자식이 좋은 여건에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무숙의 단편소설 <생인손>에 나타나는 표마리아 할머니의 딸 사랑 인생은 한(恨)스럽기만 하다. TV문학관으로도 방송된 바 있는, 기구한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20세기 초 구한말 시대, 표마리아는 원래 사직골 정참판댁 아씨의 몸종이었다. 비슷한 나이의 아씨가 자라 박대감 댁으로 출가를 하자 표마리아는 교전비(轎前婢. 혼례 때 신부가 데리고 가던 계집몸종)로 따라가야 했다.

둘은 박대감 댁에서 비슷한 시기에 딸을 낳게 됐다. 하지만 표마리아는 자신의 딸 간난이에게 젖을 주기 보다는 상전인 아씨의 딸에게 젖을 주어야 하는 유모 역할의 종이었다.

하지만 딸 간난이가 생인손을 앓게 됐다. 지금이야 종기가 그리 큰 병은 아니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다. 표마리아는 자신의 딸 간난이와 아씨의 딸을 바꿔치기 했다.

둘은 신생아에서 신분이 바뀌었다. 자신의 딸 간난이를 상전의 딸로 위장전입시킨 것이 성공해 자신의 젖을 먹이며 정성스레 키웠다. 그 뒤 개화세상이 되고, 상전 양반의 딸로 자란 자신의 친딸은 시집을 간다.

대신 호적상 자신의 딸이 돼버린 본래 아씨의 딸은 “배워야 한다”는 권학대(勸學隊)를 따라 집을 나간 후 서양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 땅에는 6.25한국전쟁이 터지고 식솔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종전 후 어느 날 이산가족 만나듯 박대감집 사람들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데, 본래 아씨의 딸은 대학교수가 되어 있고, 생인손을 앓았던 친딸은 남의 집 식모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표마리아 할머니가 아흔일곱의 나이에 신부에게 고해했기 때문.

한국현대문학대사전에 따르면,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서 표할머니의 친딸 간난이가 알았던 생인손은 특정한 개인이 앓았던 일시적인 병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라고 진단한다.

종이며 유모였던 표할머니가 상전의 딸에게만 젖을 물려야 하는 아픔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전인 아씨에게도 시집살이의 고단함이 있었고, 그들에게는 배주림보다 더 큰 정(情)주림이 있었다. 종에게는 천대받는 상처가 있었고, 상전에게는 상전들 나름의 문중 참변이 존재했다.

발생 원인은 다르겠지만, 그 같은 아픔은 21세기 한국에 지금도 남아있다. 배주림과 정주림이다. 부모 사망으로 자녀들만 살아야 하는 소년소녀 가장이 있고, 계모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나와 떠도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경우 과거에는 고아원에 수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는 2000년부터 가정위탁보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부모의 사망이나 학대, 질병 등으로 가정에서 아동을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일정기간 위탁가정에서 아동을 보호, 양육하는 시스템이다.

부모 없이 자라야 하는 아동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정서적 결함은 부모의 정을 느끼며 생겨야 하는 애착형성이 결핍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꿈과 희망마저도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다.

이를 위해 아동에게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 가정위탁보호 제도다. 표마리아와 같은 보모를 두고 키우는 대리양육 가정, 조부모나 친척이 키우는 친인척 위탁가정, 독지가가 키우는 일반 위탁가정이 있는데, 대리양육 형태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제도일지라도 친부모가 정성스레 키우는 것보다 더 좋은 성장환경은 없다. 자신의 친딸이 좋은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욕심에 상전의 딸로 바꿔치기한 표마리아의 가정위탁 보호는 결국 실패했다.

가정의 달 5월도 이제 막바지다.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는 한국이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배주림과 정주림으로 방황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5월이 가기 전에 이들에 대한 관심이 범국민적으로 증폭되기를 기대해본다.

◇ 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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